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 해당 기업, 언론의 대응에 관한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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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호소를 인정하고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이후 미쓰비시 중공업, 후지코시, 히타치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배상을 명하는 대법원의 세 판결이 2019년 1월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 “국제법 위반”이다, 라고 하며 한국 정부에 항의했습니다. 조선사(Korean history) 연구의 축적과 학술적 관점에서 볼 때 “해결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것입니다.

 2019년 7월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를 강화했는데, 대법원 판결과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보복 조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 조치는 일본과 한국의 우호와 평화에 반하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아래와 같이 저희들의 견해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1.식민지 지배 하의 전시 강제동원・강제노동의 역사를 공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은 불법적 식민지 지배 아래 수행된 전시 강제동원・강제노동에 대한 손해배상(위자료)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가해 기업의 반인도적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촉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정부와 일본의 주요 언론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할 뿐, 일본에 의한 반인도적 행위와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조선사 연구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들이 전시 하에서 ‘모집’ ‘관알선’ ‘징용’ 등의 정책에 근거해 강제동원되었고 엄중한 감시 하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위법한 강제노동이 있었음은 일본에서 진행된 재판에서도 사실인정된 바 있습니다. 우선 일본 정부와 언론은 피해자들이 왜, 어떻게 강제동원・강제노동을 당했는지에 관한 역사를 학술 연구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역사를 말하지 않고 계속 “해결되었다”고만 주장한다면 일본의 가해 행위와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의 역사는 은폐되고 맙니다.

2.한일 청구권협정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2005년 이후 한일 양국에서 그때까지 공개하지 않던 외교문서를 공개함으로써 한일 청구권교섭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었고, 청구권교섭과 그 결과 체결된 청구권협정으로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사실 규명, 사죄 및 배상 등의 책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식민지 지배를 합법적이자 정당한 것으로 보는 일본 정부와 한국병합 조약은 애초에 무효였다고 보는 한국 정부의 견해가 대립하여, 결국 식민지 지배에 관한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는 교섭 과정의 구체적 내용도 밝혀졌습니다. 청구권교섭 과정에서는 한일 간의 ‘재산’ ‘청구권’만 논의되었고, 청구권협정에서는 일본이 한국에 공장 시설 및 원재료 등을 무상・유상으로 제공하는 ‘경제협력’을 통해 ‘재산’ ‘청구권’ 문제에 한해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고 마무리되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 및 전쟁 책임, 그리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라는 논점에 대해서는 교섭의 의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미해결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3.강제동원, 한일회담 관련 자료 공개를 촉구합니다.

 2004년 한국 정부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규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응하여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등을 전달하고 피해자와 한일 시민들의 문서공개 요구운동에 응하여 한일회담 문서 대부분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강제동원되었던 노동자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자료 조사와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강제노동에 관한 비공개 역사자료 및 아직 개시되지 않은 한일회담 문서 등을 조사하고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제동원・강제노동에 관여한 해당 기업도 기업 소장 자료를 조사,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4.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은 ‘과거의 극복’을 위한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한국의 민관공동위원회는 2005년, ‘국가권력이 개입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남아 있다’라는 논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결과를 받아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도의적・원호적 차원, 그리고 국민통합적 차원의 정부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이 방침에 따라 2007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 지원 조치를 시행해 왔습니다. 한편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은 “해결되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은 식민지 지배 책임의 관점에서 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식민지 지배 하의 가해・피해 사실과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하고, 미래 세대에게 피해・가해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는 책무를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국교정상화라는 중요한 과제 수행에 있어서도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책무입니다.

5.배외주의를 극복하고 기본적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 ‘폭거’ ‘무례’ 등의 단어로 노골적,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있고, 많은 일본의 언론은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자세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착실하게 쌓아온 한일 간의 교류가 중단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조선・한국에 대한 증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듯한 언동이 텔레비전, 신문, 잡지 및 SNS 상에 확산되고 있고, 심지어는 폭력을 부추기는 발언까지 공공연히 유포되고 있습니다. 일본 사회는 조선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식민주의를 전후 지금까지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 사회 내부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배외적 언동에 대항하여 출신과 상관없이 기본적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조선사 연구자들은 학술적 견지에서 이러한 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 나가겠습니다.

2019년 10월 29일

조선사연구회

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AL SCIENCE